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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보지 못한 인생길에 들어선다면… 당신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알면서도 차마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40년을 보냈다면 다시 그 갈림길로 돌아갈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 풍족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순간의 객기나 만용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블러바드’(13일 개봉)는 대담하게도 지금까지 이뤄 왔던 것들을 모두 뒤로하고 진실의 거울 앞에 선 한 남자를 보여 준다. 그는 행복이라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막연히 떠도는 사람들이나 여전히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는 이들과는 또 다른 차원에 서 있다. 가 보지 못한 길에 한 발을 디딜 때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아파하고 후회하며 지냈을까. 영화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화법으로 서글펐던 그의 과거와 격정적인 현재를 녹여낸다.

‘놀런’은 착한 아들, 다정한 남편, 성실한 은행원으로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 좋은 겉껍데기에 불과하다. 사실은 보수적인 가정에 대한 원망이 그의 가슴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방을 따로 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부부 생활에는 어떤 끈끈함이 없다. 승진을 앞두고도 담담하기만 한 그에게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만족감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런 놀런의 삶이 뒤바뀌게 되는 것은 어느 날 그가 ‘낯선 길’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것은 그가 ‘레오’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는 길임과 동시에 갈림길의 가 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안내하는 길이다.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놀런은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그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레오를 도와주고 격려해 주면서 전에는 없었던 삶의 의욕과 활기를 갖게 된다.

‘블러바드’라는 제목을 통해 예고한 것처럼 디토 몬티엘 감독은 성 정체성이나 동성애자들의 인권과 같은 주제를 넘어 우리 개개인이 의심 없이 가고 있는 인생길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놀런이 레오로부터 원하는 것이 육체적인 관계가 아니라 둘만의 특별한 교감과 친밀감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의도를 잘 드러낸다. 밑바닥 인생을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던 레오에게 놀런의 호의와 관심이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이나 놀런으로 인해 크게 상처받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아내의 모습 또한 우리 앞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선택지가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카메라는 종종 놀런이 운전하는 모습을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비춰 준다. 한 번의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삶의 변화에 대해 예민하게 관찰해 온 감독의 섬세한 감성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원히 스크린의 빛으로 남은 골 깊은 입가와 쓸쓸한 미소는 놀런의 것이었을까, 로빈 윌리엄스의 것이었을까. 어떤 수사로도 로빈 윌리엄스의 마지막 모습을, 그 복잡다단한 심경의 얼굴을 정확히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배우라 해서 가 보지 못한 길에 미련이 없었겠는가마는,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던 그의 연기 인생만큼은 비할 데 없이 값진 것이었다는-평범한-말로 그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 15세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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