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구로사와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범인이 가장 가까이 있는 옆집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서스펜스 스릴러의 기본적인 아이디어가 매우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그는 그야말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언급했을 뿐이다. 구로사와는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한 함의를 담은 영화를 만들었다. 니시노가 범죄자·악인이라는 사실은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그러한 설정을 가진 작품은 이미 많이 있다. ‘크리피’는 ‘이웃은 괴물’이라는 테제를 재확인하는 데만 그치지 않아서 흥미로운 영화다. 구로사와는 이렇게 되묻는 것 같다. ‘누군가의 이웃으로서 실은 나도 괴물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웃의 방문을 니시노는 극도로 경계한다. ‘나’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크리피’는 다카쿠라·야스코 부부가 서로가 서로에게 생소한 이웃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한 집에 살아도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 아니다. 이들은 “네 이웃이 너를 사랑하는 만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프로이트의 등가교환 논리를 충실히 따른다. 허나 그것으로는 이웃 간의 빈틈을 완전히 메우지 못한다. 그 지점을 또 다른 이웃 니시노가 파고든다. 공백의 자리에서 세 사람은 쾌락을 향유하며 몰락해 간다. 이것이 구로사와가 그리는 진짜 이웃의 공포다. 18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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