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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영화 투자처 다양화…국내외 배급사 경쟁 치열할 듯

영화 ‘밀정’이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대박 조짐을 보인다.

‘밀정’의 흥행은 할리우드 메이저 배급사인 워너브러더스가 처음으로 투자·제작한 한국영화가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영화계에서는 ‘밀정’의 성공이 할리우드 직배사들의 한국영화 투자를 늘릴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할리우드 직배사들은 지난 5월 700만 명 가까이 동원한 이십세기폭스의 ‘곡성’에 이어 ‘밀정’까지 연타석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 투자에 보다 자신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국내외 투자·배급사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한국영화의 소재가 풍성해지는 등의 변화가 예상된다.

◇ “할리우드 자본, 한국영화계 메기 역할”

11일 영화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무장독립단체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의 이야기를 그린 ‘밀정’은 개봉 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질주 중이다.

이런 흥행 속도는 역대 천만 관객을 모은 ‘국제시장’, ‘변호인’과 비슷해 올해 ‘부산행’에 이어 두 번째 천만 영화가 탄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를 낳고 있다.

영화계는 ‘밀정’의 성공을 계기로 한국영화 제작에 직접 뛰어드는 할리우드 자본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나 제작자들에게는 투자처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특히 참신한 소재를 찾는 할리우드 자본의 특성상 보다 모험적인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투자원이 다양화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할리우드의 자본 투자는 상대적으로 양질의 감독과 프로젝트에 집중되겠지만, 그러면서도 국내 자본들보다는 더 모험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도 국내 투자자들이 기피하고 있을 때 폭스가 나섰고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좋은’ 감독과 프로젝트를 할리우드 자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국내 투자자들도 도전적이고 포용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형호 영화시장 분석가는 “할리우드 자본의 직접 투자가 늘면 한국영화 소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할리우드 자본이 영화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제작환경·해외진출에도 긍정적

할리우드 자본의 국내 진출은 한국영화 제작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화 ‘라스트 스탠드’(2013년)로 할리우드 현지 제작 방식을 경험한 김지운 감독은 지난달 4일 열린 ‘밀정’ 제작보고회에서 “할리우드 제작 방식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지만, 한국은 정서적인 면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 때 훨씬 더 안정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한 게 한국에서 외국 스튜디오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밀정’은 내년 2월 열리는 제89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외국어 영화부문에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할리우드 제작사가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한국의 대표영화로 선정돼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셈이다. 다소 아이러니처럼 보이지만 이 때문에 어느 해보다 수상에 대한 기대는 높다.

‘밀정’은 베니스 영화제와 토론토 영화제에도 초청을 받았다.

올해 칸 영화제에 진출한 나홍진 감독의 ‘곡성’도 이미 해외 각국에 수출되며 호평을 받고 있다.

‘곡성’으로 자신감을 얻은 이십세기폭스는 5번째 한국영화로 ‘대립군’을 제작 중이다.

이 영화는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피란한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인 광해가 조선을 지켜야만 했던 역사 속 이야기와 고된 군역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신해 돈을 받고 군 생활을 하는 대립군(代立軍)을 소재로 한 영화다.

내년 개봉 예정으로,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이정재와 여진구가 주연으로 나선다.

워너는 올해 개봉 예정인 이병헌, 공효진 주연의 ‘싱글라이더’에 이어 박훈정 감독의 ‘VIP’, 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을 차례로 선보일 예정이다.

◇ ‘비싼 수업료’ 치른 할리우드 자본

셈법에 밝은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한국영화 제작에 나선 것은 한국영화 시장 규모와 잠재력, 소재의 다양성 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시장은 2013년부터 연간 관객 2억 명을 넘어선 데다, 1년에 천만 관객 영화도 2∼3편씩 꾸준히 나오는 시장이다.

‘올드보이’나 ‘엽기적인 그녀’, ‘장화 홍련’처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참신하면서 다른 국가에서도 공감을 살만한 소재들의 영화도 제법 나온다. 국내 메이저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소재 고갈에 시달리면서 시리즈물이나 리메이크, 리부트, 프리퀄(전작), 시퀄(속편), 슈퍼 히어로와 같은 영화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한국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은 다양한 영화 소재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확보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즉,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면 원천 소스를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할 방법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할리우드 자본이 한국영화계에 처음부터 연착륙한 것은 아니다.

이십세기폭스는 ‘런닝맨’(2012년·142만 명), ‘슬로우비디오’(2014년·117만 명), ‘나의 절친 악당들’(2015·13만 명) 등을 내리 실패한 뒤 네 번째 프로젝트 ‘곡성’에 가서야 흥행 문턱을 넘었다.

이 때문인지 워너브러더스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작품을 첫 영화로 골랐다.

‘밀정’은 해외 인지도가 높은 김지운 감독과 한국의 톱배우 송강호·이병헌의 만남, 일제강점기 스파이 영화라는 소재의 참신성 등 여러 흥행 요소를 골고루 갖춰 애초 실패 가능성이 작았다. 이 영화의 총제작비는 140억 원으로 현재의 흥행 속도를 보면 손익분기점(420만 명)은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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