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형 집 은둔… 8년간 총게임 몰두
재활 중 접한 총 매력 빠져 선수로
사격 덕에 결혼·아들은 새 활력소
길고 긴 절망의 터널을 벗어나는 데만 8년이 걸렸다. 장애인사격 국가대표 조정두(37·BDH파라스)의 2024 파리패럴림픽 남자 10m 공기권총 금메달은 인고의 세월이 빚은 결정체였다. 군 복무 중 뇌척수막염을 앓고 하반신이 마비된 조정두는 ‘인생의 전환점’인 사격을 통해 아내를 만났고, 지난 9월 아들까지 얻었다. 이제 가족과 함께 패럴림픽 2연패를 향해 질주한다.
조정두는 지난달 30일 막을 내린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선 남자 공기권총과 혼성 10m 권총(이상 스포츠 등급 SH1)에선 모두 개인전 동메달에 그쳤다. 그는 “예기치 못한 다리 경직에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경쟁심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면서 “훈련에 집중하면 금세 제기량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서울신문은 패럴림픽 직후 수원 보훈재활체육센터에서 그를 만나 패럴림픽의 소회를 들었고, 5일 추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7년 군대에서 조정두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상병 진급 직전 뇌척수막염에 걸려 전신 마비됐고 하체 신경이 돌아오지 않았다. 조정두는 “일주일만에 마취에서 깼는데 수년 만에 일어난 것 같았다. 걸을 수 없다는 불안감에 우울증이 밀려왔다”고 돌아봤다.
이후 경기 안산에 있는 친형 집에 들어가 8년을 게임에만 몰두하며 은둔했다. 그러다 부모님이 터를 잡은 대전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재활체육센터에서 우연히 총을 잡았다. 조정두는 “언젠가 혼자 남을 테니 생활력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여러 종목 중 별생각 없이 사격을 선택했다. 방안에 틀어박혀 슈팅 게임을 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웃음). 지하 사격장에 내려간 날부터 매력에 빠져 올라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물오른 기량으로 장애인사격월드컵 2위를 차지한 조정두는 올해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그는 “운동을 통해 활발해져서 지인의 친구였던 아내에게 적극 다가설 수 있었다. 와이프를 만나기 위해 매주 광주를 찾았다. 아내가 대전으로 두 번밖에 오지 않은 건 서운하다”고 웃었다.
아들 예준이는 새로운 동기부여다. 지난 9월 10일 파리에서 귀국한 사격 챔피언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12일이 예준이의 탄생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언론 인터뷰와 각종 시상식, 장애인체전으로 인해 아내 곁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패럴림픽 전에도 합숙으로 계속 집을 비웠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면서 “내년 1월까지 육아에만 전념할 계획이다. 시즌 시작인 3월에 맞춰 훈련을 시작할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패럴림픽 사격 선수단 막내였던 조정두의 목표는 2028년 LA 대회 한국 최우수선수(MVP)다. 이번 MVP는 사격 2관왕 박진호(47·강릉시청)였다. 그는 “진호형은 경력이 많고 저는 이번이 첫 패럴림픽”이라며 “다음 대회 2관왕, 2연패로 장기 집권의 발판을 놓겠다”고 다짐했다.
서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