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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사용설명서’ 첫 주연… 데뷔 17년차 ‘대세남’

이제 그의 이름 앞에서 ‘명품 조연’이라는 수식어를 완전히 뺄 때가 왔다. 충무로의 ‘대세남’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올해로 데뷔 17년차를 맞는 배우 오정세(36) 얘기다.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보고싶다’에서 껄렁껄렁한 형사 캐릭터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인 그는 오는 14일 개봉하는 로맨틱 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첫 주연 자리까지 꿰찼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최근 상승세를 타는 소감부터 물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보고싶다’로 주목받은 데 이어 신작 ‘남자사용설명서’로 상업 영화 첫 주연을 꿰찬 오정세. 그는 예전과 분위기가 달라보인다는 말에 “영화를 찍을 때 운동하면서 살을 빼기도 했고 요즘 카메라 마사지도 좀 받은 것 같다. 알아보는 분도 조금 늘었다. 이제 할 일은 겸손밖에 없다는 주변 선배들의 말이 부쩍 가슴에 와 닿는다”면서 웃었다.<br>연합뉴스


“소감이 크게 남다르지는 않아요. 사실 영화 ‘거울 속으로’(2003)때부터 매년 올해의 기대주로 꼽혔는데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과 현실은 달랐어요. ‘시크릿’(2009)으로 방점을 찍는가 싶었는데 다시 또 내려가고…. 굴곡이 있는 것이 배우의 숙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잘된다고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거나 주연 타이틀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아요.”

1997년 영화 ‘아버지’로 데뷔해 단역, 조연을 거치며 수많은 영화와 연극에 출연하며 내공을 쌓은 덕인지 그는 뒤늦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오정세는 주로 코믹한 찌질남 캐릭터로 주로 각인됐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미남 배우만 맡는다는 톱스타 역할에 도전했다. 그가 맡은 이승재는 허세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한류스타다. 너무나 급격한 ‘신분’(?) 변화가 어색하지는 않을까.

“많은 분이 톱스타 역할이라고 하면 잘생긴 외모에 거만하고 까칠한 행동을 하는 나쁜 남자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했다가는 비호감이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승재를 다른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조금은 현실적이고 땅에 발이 붙어 있는 캐릭터로 그리려고 했죠. 사실 노력 없이 한순간에 뜬 톱스타와 나름대로 10년 정도 노력한 뒤에 성공한 톱스타는 자세가 좀 다르잖아요. 극 중 승재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했죠.”

데뷔 초반 스스로 프로필을 열심히 돌리고 숱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진 승재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예전 모습을 떠올렸다는 오정세. 대학 연극영화과 대신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꿈꿨던 배우의 길을 놓지 못한 그. 처음에는 오디션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배우였다.

“배우는 오디션이라는 관문을 뚫어야 하는데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 못하는 친구였어요. 연기를 못 하니까 자신감이 없기도 했구요. 하도 떨어지니까 어느 날은 술을 마시고 오디션을 본 적도 있었죠. 오기가 생겨서 언제부턴가는 시켜줘도 안 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어느 날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오디션을 보게 되더군요.”

마음을 비우니 기회가 찾아왔고 그렇게 배우 생활을 시작됐다. 그가 학창 시절 배우를 꿈꿨던 것은 ‘연예인 병’에 걸렸거나 스타 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물리치료사가 환자의 아픈 허리가 나아지면 기뻐하는 것처럼 관객들이 나를 보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좋은 에너지를 갖고 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평생 배우를 즐기면서 하고 싶다는 그의 철학은 ‘쩨쩨한 로맨스’, ‘라듸오 데이즈’, ‘커플즈’ 등에서 어깨에 힘을 뺀 현실적이고 찌질한 역할들을 잘 소화하는 밑거름이 됐는지도 모른다.

오정세는 ‘남자사용설명서’에서 허세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한류스타 이승재 역을 맡아 코미디와 멜로를 오가면서 좋은 연기를 펼쳤다.<br>데이지엔터테인먼트 제공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은 일에 치여 제대로 연애 한번 못 해본 CF 조감독 최보나(이시영)가 우연히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테이프를 구입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보나는 이 테이프에 등장하는 닥터 스왈스키(박영규)의 지침을 활용해 한류스타 이승재와 CF 재촬영을 성사시킨다. 이제 둘의 관계는 묘하게 발전한다. 이번 영화에서 오정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그는 복싱 선수인 이시영에게 5분여 동안 주먹으로 사정없이 맞는가 하면 전라 연기를 감행해 벗은 뒤태가 스크린에 고스란히 등장했다.

“대역 없이 중요한 부분만 가리고 맨몸으로 2층에서 와이어에 매달렸는데 물론 현장에서 옷을 벗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고 무안했어요. 근데 제가 민망해하면 스태프들이 불편해할 것 같아 애써 태연한 척을 했죠.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나에게 키스를 시도하다가 맞는 장면은 사전에 합을 맞추지 않고 계획 없이 찍었어요. 말 그대로 생짜 액션이라 아프기도 했지만, 반응이 생생하게 나와서 배우로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시영의 돌주먹은 생각보다 맞을 만하던데요.(웃음)”

그는 상대역인 이시영에 대해 “배우와 복싱 선수의 두 개의 꿈을 찾고 있는 시영이는 혹시 한쪽에서 빈틈이 보일까봐 더 치열하게 연구하고 노력을 많이 한다”면서 “무엇보다 연기에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그는 영화 속에 소개된 연애 기법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까.

“어떻게 보면 뻔한 방법들이죠. 상대방에 따라서 다르고 얼마나 유용하게 자기화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일단 저는 이성을 많이 만나보고 누군가가 레이더망에 들어오면 장기 플랜을 잡아 접근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네요. 조급하게 다가서면 무리수를 두게 되거든요. 최소 3년 이상 상대방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알아본 뒤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런 기술을 써볼 틈도 없이 초등학교 때 첫사랑과 7년 전 결혼에 ‘골인’했다. 그는 “아내가 저보다 더 인기에 무덤덤한 편이라 배우로서 생활하기에 편하다”면서 웃었다. 앞으로 그는 어떤 색깔의 배우를 꿈꿀까.

“저는 배우로서 진한 색깔을 지니기보다는 무채색의 배우가 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도 작품의 흥행에 좌우되지 않고 어떤 역할도 잘 소화해내는 색깔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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