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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성매매 ‘찌라시’, 여성·스타·성 중첩돼 폭발력”

“OOO 2천만 원……3류급 500만 원……아직 안 풀린 비공개 SA급은 2천만~3천만 원선…….”

지난주 방송가를 뒤흔든 여성 연예인 성매매 ‘찌라시’(사설 정보지) 중 하나다.

몇몇 연예인이 최근 성매매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 이 ‘찌라시’는 온라인에서 급속히 퍼졌다. 실명이 거론된 연예인의 법적 대응 선언이 잇따랐다.

◇ “여성·스타·성 중첩돼 폭발력”…‘마녀사냥’ 대중 심리도

‘찌라시’가 돌고 도는 것은 남의 삶을 엿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 중 여성 연예인 성매매 ‘찌라시’는 여러 면에서 특히 ‘구미가 당기는’ 문건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27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여성 연예인 성매매 ‘찌라시’는 여성과 연예인이라는 점, 그리고 폭발력을 가진 성매매 의혹까지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요소가 중첩돼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관음의 대상은 여성이다. 여기에 스타와 권력자(로 설명되는 성매수 남성)의 은밀한 사생활을 알고 싶다는 욕망까지 온전히 충족시켜 주는 것이 여성 연예인 성매매 ‘찌라시’다.

그 욕망을 확인한 다음에는 ‘마녀사냥’을 통해 이름이 회자되는 연예인을 매장하려는 대중 심리도 분명히 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 성매매라는 범죄를 저질렀으니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논리다.

여성 연예인 성추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에도 많은 여배우가 확인되지 않은 풍설의 중심에 섰다.

물론 이 추문 중 일부는 진실과 뜬소문 사이 어디에 위치해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1990년대 중반 명문가 자제들이 연예인 지망생을 성 노리개로 삼는 이야기가 전개됐다.

비슷한 시기 방송된 SBS TV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시크릿 리스트와 스폰서’ 편은 ‘시그널’ 이야기가 개발독재시대 풍경만이 아님을 똑똑히 보여줬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라는 절규만 남기고 지난 2009년 세상을 등진 여배우 장자연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름이다.

그 이듬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여성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연기자 10명 중 6명(60.2%)이 성접대 제의를 받았다고 답했다.

잊을 만하면 보도되는 유력인사나 재력가, 연예인이 얽힌 성추문도 ‘찌라시’ 일부는 진실일 것이라고 대중이 굳게 믿도록 한다.

◇ 무참하게 짓밟히는 인권…“이미지도 회복 불능 타격”

문제는 그 와중에 한 인간의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힌다는 데 있다.

여성에게 성 스캔들은 진위에 관계없이 치명상을 남긴다. 이번 루머에 휘말린 연예인들은 소속사를 통해 배포한 입장 자료에서 하나같이 여성으로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안게 됐다고 밝혔다.

1970년대 스타로, 아프리카 대통령 아들을 낳았다는 풍문에 휩싸였던 배우 정소녀(62)도 지난해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해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지난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겠느냐”고 억울함을 토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노이즈 마케팅’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지만, 성추문이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리 없다.

고소장을 접수한 한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여성 연예인은 특히나 ‘이미지’가 중요한데 터무니없는 사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재산이 회복 불능 정도로 타격을 입는다”고 호소했다.

요즘에는 ‘찌라시’가 제어하기 어려운 온갖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다수에게 퍼지는 것도 특징이다. 일상적인 대화 통로인 카카오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고받는 ‘찌라시’에 보내는 이도, 받는 이도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소속된 배우가 명단에 언급된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에서 퍼지는 속도를 보면서 손 놓고 있을 수 없겠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다”면서 “각자 받은 ‘찌라시’ 버전도 제각각이라 놀랐다”고 전했다.

끈질긴 생명력도 ‘찌라시’ 특징이다.

이번에 온라인에 나돌았던 여성 연예인 성매매 ‘찌라시’에는 2013년 허위로 판명된 문건도 포함됐다.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주가가 치솟은 송혜교도 검찰이 거짓이라고 발표한 스폰서 루머가 다시 돈다며 최초 유포자 색출에 나섰다.

이런 일이 불거질 때마다 여성만 문건에 등장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이름을 알린 배우 이민지는 25일 자신의 트위터로 “왜 포주와 (성매수) 남자 이름은 안 밝히는 거냐”고 일침을 가했다.

◇ “연예인 헐뜯는 유희 수준…남 구경에 재미 들린 사회”

설령 성매매 사실이 드러난 여성 연예인이라고 해도 이를 마구잡이로 소비하는 행태는 지나치다. 많은 연예인이 권력 구도상 약자인 상황에서 성강요와 성상납, 성매매를 뚜렷이 구분 짓기도 어렵다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23일 원정 성매매 혐의(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벌금형에 약식 기소된 유명 가수 A씨는 한 달 전부터 실명과 ‘죄목’이 온라인에서 나돌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에는 A씨를 ‘물고 뜯고 씹는’ 댓글이 달렸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유명 인사로서 감당할 몫이 있다는 의견을 펴기도 한다.

방송가 관계자는 “연예인은 자기를 대중 앞에 노출하고 이를 통해 상당한 부와 명예를 얻으니 반작용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면서 “형법상 죄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이 도구로 전락한 연예계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지목된 연예인을 헐뜯는 아주 즐거운 유희”(전상진 교수) 수준에 그친다는 데 우리 ‘찌라시’ 문화의 문제가 있다.

언론 매체가 여성 연예인의 모든 것을 선정적,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대중은 이를 즉흥적으로 소비하는 행태가 사태를 심화시킨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남의 삶을 구경하는 데만 아주 재미가 들었다”면서 “모든 뉴스가 여배우가 어땠다느니 클릭 한 번 하고 마는 찰나적인 재미와 소비로 넘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KBS의 한 시사교양 PD도 “요즘 우리 사회는 연예인 외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연예 매체를 비롯한 언론도 팩트를 신성하게 여기지 않고, 도덕적인 마지노선도 없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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