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 한 생물이 색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남의 몸속에 들어가 기생을 시작한 것이다. 기생은 배고픔과 추위, 천적의 위협과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기생생물이 번성하자 숙주가 되는 생물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반격을 시작한다. 세상은 기생과 비기생 생물로 나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시작했다. 기생충과 숙주 간의 끝없는 싸움, 이것을 우리는 ‘진화의 역사’라고 부른다.
EBS는 22~25일 밤 9시 50분 다큐프라임 ‘기생’(寄生)를 방영한다. 제작진은 이 다큐를 “과학다큐와 자연다큐 그리고 휴먼다큐의 중간쯤에 있는 비전형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기생충이라는 극히 작은 생물체를 다루기 위해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우리가 몰랐던 지구 생태계의 비밀과 역사를 뒤지는 눈이 요구되며 나아가 사람의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프로그램에는 수많은 기생충과 숙주가 등장한다.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이야기가 뒤섞여 나오지만 우리의 결론은 하나다. 기생충과 숙주는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진화의 동반자라는 사실이다.
1부 ‘보이지 않는 손’에선 자기보다 수천만 배 거대한 숙주를 조종하는 기생충의 놀라운 모습을 소개한다. 숙주의 몸에서 평생을 사는 기생충도 있지만 숙주를 옮겨 가며 삶을 이어가는 기생충도 많다. 다음 숙주를 찾지 못할 때 기생충의 삶은 끝난다. 그래서 이들은 숙주의 몸과 정신을 조종하는 온갖 기술을 개발했다. 예컨대 기생충 연가시는 사마귀나 귀뚜라미 같은 육상 곤충의 뱃속에서 성장하다 때가 되면 숙주 곤충을 조종해 물가로 가게 만든다. 연가시에 감염된 곤충은 수영을 하지 못하지만 물로 뛰어들고 죽음을 맞는다. 뱃속에 연가시가 가득한 이들은 물속에서 자신의 알을 낳는 대신 기생충 연가시를 낳고 죽어 간다.
2부 ‘끝없는 대결’에선 대부분의 생물이 갖고 있는 ‘성’과 ‘면역’ 시스템이 기생충과의 경쟁 속에서 숙주가 개발해 낸 최고의 전략이란 사실을 공개한다. 얼룩말의 얼룩이 체체파리의 시선을 교란시키기 위한 방법이었다는 일부 학자의 주장도 전한다.
3부 ‘대결에서 공존으로’와 4부 ‘기생, 그리고 사람들’은 돼지편충을 이용한 크론병 치료, 진드기를 퇴치하는 콜레마니 기생벌 등 기생충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의 삶을 다룬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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