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YG빌딩 연습실. 힙합 모자를 눌러쓴 타블로(32)와 머리를 추켜올린 DJ투컷(31)은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늦가을 햇살이 연습실 가운데를 비추자 멤버 3명의 얼굴에선 제각기 밝은 빛이 감돌았다.
타블로는 “제 별명이 원래 ‘호불호’인데 이번 앨범에서도 역시나 (팬들의) 의견이 갈렸다.”면서 “예전에 앨범을 냈을 때도 전자음이 섞인 음악이라거나 힙합에서 ‘뿅뿅’ 소리가 난다며 정말 말들이 많았는데 1~2년 지나면 다 잊히더라.”고 말했다.
그룹 ‘에픽하이’가 최근 정규 7집 앨범 ‘99’를 들고 3년 만에 돌아왔다. 미쓰라진(29)과 투컷의 군 입대, 타블로의 학력 위조를 둘러싼 법정공방으로 각자 마음속에 생채기가 난 터였다. 그만큼 이번 앨범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내년 데뷔 10주년을 앞둔 ‘전초전’이랄까 혹은 팬들의 기억에서 잠시 망각됐던 존재감을 되살리는 신호탄이랄까. “3년 만의 공연에 울컥했다.”고 했다.
●“데뷔 9년차… 아직은 기분 좋은 애들로 봐주세요”
지난 21일 SBS 인기가요의 컴백무대에서 에픽하이는 ‘쇼핑카트’를 타고 개구쟁이 같은 짓궂은 퍼포먼스를 펼쳤다. 데뷔 9년차로 3명의 멤버 중 2명이 이미 30대 유부남인 에픽하이에게 개구쟁이라니?
미쓰라진은 “우리를 보고 기분 좋은 애들이 무대에서 잘 논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앨범 색깔은 온통 형광색으로 도배됐다. 또 신곡 ‘돈 헤이트 미’에 나오는 “제가 그렇게 미워요? 저를 사랑해줘요.”라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타블로의 아내이자 배우인 강혜정이다. 팬들에겐 깜짝 선물인 셈이다. 타블로는 “앨범 작업을 마치고 셋이 부산 여행을 다녀왔는데 구토가 날 때까지 회도 먹고 술도 마셨다. 정말 먹고 마시기만 했다.”면서 “따로 있으면 나름대로 무거운 사람들이지만 같이 있으면 현실감을 아예 잊는다.”고 말했다.
앨범 작업도 “YG의 양현석 사장님은 선생님, 우린 장난꾸러기 학생처럼 임했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앨범 발표와 함께 더블 타이틀을 내민 것도, 작곡을 공동으로 마무리한 것도 이런 영향이다. 에픽하이는 최근 대형 기획사인 YG로 둥지를 옮겼다.
●YG로 둥지 옮겨… 1990년대 복고풍으로 회귀
타블로는 “(학력 위조 공방으로) 1년 전에 어려움을 겪을 때 제가 먼저 옮겼고 최근 투컷과 미쓰라진까지 왔다.”면서 “YG의 색깔에 에픽하이의 개성이 묻힐 것이란 우려도 있지만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사옥 시설이 좋고 밥도 해준다. 녹음실을 빌려 쓸 필요가 없으니 마음도 편했다.”며 미소지었다. 덕분에 이번 앨범은 밝아졌고 우상인 ‘서태지와 아이들’을 추억하며 1990년대 복고풍으로 회귀했다.
환경보다 내면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는 에픽하이지만 그동안 겪어 온 어려움을 각각 ‘롤러코스터’ ‘다사다난’ ‘희로애락’에 빗대어 설명했다. 타블로는 “홍대 앞에서 노래 부르던 애들이 어느새 앨범을 내고 지상파 방송 음악 차트 1위를 넘나드는 현실이 그렇다.”면서 “세상 어디선가 반드시 누군가 당신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힘을 내자.”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