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 차림의 그가 탄피를 잃어버려 당황하거나 ‘군대리아’ 맛에 감탄하는 모습이 전파를 탈 때마다 시청자는 배꼽을 잡고 웃는다.
한국에서 방송활동을 시작한 지 10여 년 만에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의 이야기다. MBC 병영 체험 리얼 버라이어티 ‘진짜사나이’에 출연 중인 그를 최근 서울 이태원 근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어제도 택시를 탔는데 운전하는 분이 바로 나를 알아봤어요. 탈 때부터 내릴 때까지 군대 얘기를 나눴죠. 1980년대 군대에 갔고, 월급이 얼마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진짜사나이’ 촬영은 예상과 달리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를 비롯한 출연진은 3월 말 진행된 촬영에서 육군의 협조를 받아 5박6일간 훈련소 입소부터 자대 배치까지 실제 병사들과 함께 생활했다.
”딱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람보’같은 영화를 보며 상상해온 군대와 달랐어요. 영화에는 훈련 부분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상상 못했던 부분이 많았어요.”
그는 처음 촬영에 들어갔을 무렵을 이렇게 돌아봤다.
”처음에는 몸보다도 군대 용어가 너무 힘들었어요. 한국어를 오래 배웠지만 군대 용어는 전혀 다르더라고요. 빨리 행동해야 하는데, 명령 자체가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한마디로 ‘멘붕’ 상태가 됐죠.”
하지만 많은 대한민국 남성들이 ‘군대 다녀와야 진짜 남자가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가 훈련을 통해 배운 것도 많다고.
”우선 참을성이나 이해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또 오래 방송을 같이해도 친해지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다른 출연자들과 일주일간 같이 밥먹고 자고 씻다 보니 금세 가까워진 것도 소득이죠”
그는 특히 자신보다 동생인데도 여러 부분에서 도와준 배우 류수영과 손진영이 많이 고맙다고 전했다. 힘들 때 마음으로 위로도 해주고, 다급한 순간에 살짝살짝 귀엣말로 조언도 해줬단다.
10여년 전 KBS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며 ‘대한민국 1호 외국인 개그맨’이라는 칭호와 함께 주목받았던 그다. 이후 주로 조연, 카메오로 활동했다. 해보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동물과 함께하는 예능을 해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동물이 워낙 좋았고 동물학자를 꿈꾸던 시기도 있었죠. 예컨대 연예인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은 동물원을 운영해보는 프로그램은 어떨까요.”
’동물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촬영이 어렵지 않을까’라고 되묻자 “요즘은 ‘리얼’이 대세잖아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사랑받는 만큼 오히려 연출이 어려운 부분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며 나름의 분석도 내놓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고 싶은 그다. 호주에서는 유년기 유명 PD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오랜 기간 연기를 공부하기도 했다.
”못된 악당 역할을 꼭 해보고 싶어요. 이런 얘기를 하니까 류수영 씨는 ‘이미지랑 다른데’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는 자신의 이미지와 같은 연기를 하면 큰 발전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한 것을 잘 해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변신이 너무 좋아요.”
그는 “어머니가 항상 긴장하고 공부하라고 말했어요. 일이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으니, 끝없는 발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죠. 각자 발전하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는 책을 많이 읽고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관심을 두려 해요”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샘 해밍턴은 최근 독도와 대통령 선거, 다른 연예인에 대한 잇따른 ‘소신’ 발언으로 주목도 받았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 11년째 살고 있고 나이도 서른일곱이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발언했는데, 나중에 인터넷 반응을 보고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며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고 공격하는 것은 조금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독도 얘기가 나왔을 때는 일본 사람들이 ‘네가 뭘 아냐’며 쪽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며 “한국 사람이 내 의견을 좋지 않게 본 경우 ‘서로 생각이 다르고 누구 의견이 맞다고 할 수 없으니 이해하고 넘어갑시다’는 내용의 답신을 내가 직접 보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마냥 천진하고 순수한 모습의 그이지만 타국에서 오랜 방송 활동을 하면서 겪을 남모를 고민은 없을까.
”’한국어 공부를 더 해보라’ 조언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 사람과 다른 점이 없어지면 과연 좋을까 고민이 되죠. 한국 사람과 대상을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있을 테니까요.”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다가도 이내 “캐릭터가 있으니 어떤 사람은 살 빼지 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좀 더 빼면 잘생겨질 거라고 말한다”며 “그런데 살은 결과적으로 건강 때문에 조금 빼고 있다”며 금세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그동안 올해를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방송에 모든 것을 쏟겠다고 말했던 그다. 마지막 순간에 다시 비상을 시작했으니 그에게는 올해가 새로운 출발이 된 셈이다.
”최근 SNS에서 ‘샘 때문에 웃었다’, ‘힘들었는데 진짜사나이를 보고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는 글을 보고 정말 뿌듯했어요. 단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 웃을 수 있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으면 대만족입니다. 앞으로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