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가요계가 ‘걸그룹 대전’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레드 오션’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 상식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 걸그룹들이 쏟아지고 신인까지 가세했다. 이번 여름에 컴백하는 걸그룹만 10여개 팀이 넘는다.
우선 건강한 섹시미를 앞세운 씨스타가 지난달 22일 컴백해 ‘셰이크 잇’으로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음원 강자의 위력을 입증했다. 지난해 멤버 혜리가 MBC ‘일밤-진짜사나이’에 출연해 인지도가 대폭 상승한 걸스데이는 7일 컴백한다. 청순 걸그룹이라는 콘셉트로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에이핑크도 16일 출사표를 던진다. 모두 데뷔 5~6년차를 맞은 걸그룹으로 선두를 바짝 뒤쫓고 있다.
신인 걸그룹들도 언니들에 맞서 새 앨범을 내고 도약을 꿈꾸고 있다. 2012년 데뷔해 지난해 ‘짧은 치마’와 ‘단발머리’로 주목받은 AOA는 씨스타와 같은 날 음원을 내는 과감한 전략을 펼쳤고 마마무와 소나무, 여자친구, 밍스 등 1~2년차들도 걸그룹 대전에 뛰어들었다. 소나무의 소속사 TS엔터테인먼트 김영실 본부장은 “신인에게 선배 걸그룹과의 대결은 잘되면 좋고 안 되도 본전이다. 선배들과 맞물리는 그림만으로도 상당한 홍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걸스데이의 소속사인 드림티엔터테인먼트의 나상천 이사는 “한꺼번에 컴백하면 오히려 이슈화돼 상생하는 효과가 있다. 경쟁이 아닌 걸그룹 축제로 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왕좌를 사수하려는 이들의 수세도 볼만하다. 자타 공인 넘버원 걸그룹인 소녀시대는 7일 새 앨범을 내고 컴백한다. 싱글 1곡에 후속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2곡까지 총 3곡으로 공세를 펼칠 계획이다. 가요계 관계자들은 “소녀시대는 데뷔 9년차이지만 아직 멤버들의 나이가 많지 않고 8인 체제로는 첫출발이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걸그룹의 원조 원더걸스는 다음달에 4인 체제에다 밴드라는 실험적인 형식으로 컴백한다. 이들의 데뷔를 진두지휘했던 박진영이 타이틀곡을 작곡했다.
걸그룹에 있어 여름 시장은 노출 패션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신나는 댄스곡으로 승부를 걸 수 있어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특히 올해의 이런 현상은 지난해 여름 세월호 참사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두웠고 하반기에는 90년대 발라드 가수의 컴백이 이어지면서 걸그룹이 침체를 겪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풀이된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여름은 가을 행사철을 앞두고 컴백하는 걸그룹이 늘어나는 시기지만 올해는 특히 지난해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활동이 주춤했던 걸그룹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면서 “걸그룹은 보이그룹에 비해 팬덤이 약하기 때문에 동시 컴백의 이슈가 도움이 되고, 개별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은 걸그룹들은 잊혀지기 전에 활동을 이어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 속에 일부 히트 작곡가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부작용도 있다. 예를 들어 씨스타와 걸스데이는 둘 다 이단옆차기의 곡으로 컴백하고 AOA는 씨스타의 ‘나혼자’를 히트시킨 바 있는 용감한형제의 ‘심쿵해’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다. 콘셉트로 차별화하려는 전략을 세우지만 이마저도 겹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만들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는 음악의 또 다른 방향성을 제공해 준다”면서도 “하지만 과도한 콘셉트 및 노출 경쟁으로 인해 생명력의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