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월화극 ‘화려한 유혹’이다. 이 드라마는 ‘성악설’이 맞다고 말한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9일 방송된 ‘화려한 유혹’ 31회의 시청률은 전국 13.8%, 수도권 15.8%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방송된 SBS TV ‘육룡이 나르샤’의 전국 14.9%, 수도권 16.6%와 1%포인트 정도의 차이다.
또다른 시청률조사회사 TNMS에 따르면 이날 ‘화려한 유혹’의 시청률은 12.4%로, 작년 10월 첫 방송 이후 3개월 만에 ‘육룡이 나르샤’(12.2%)를 누르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육룡이 나르샤’가 유아인, 신세경, 변요한에 김명민까지 쟁쟁한 출연진으로 화제를 모으는 팩션 사극이라는 점과 비교하면 ‘화려한 유혹’의 ‘은밀한’ 선전은 놀랍다. 인기 요인은 뭘까.
◇‘쌍팔년도식’ 막장 통속극
최강희, 주상욱, 정진영이 주연을 맡은 ‘화려한 유혹’은 젊은층이 관심을 끌 요소 하나 없는 ‘쌍팔년도식’ 막장 통속극이다.
‘응답하라 1988’이 1980년대를 따뜻하게만 그렸다면, 1970~80년대에서 시작해 현재에까지 이른 ‘화려한 유혹’은 어둡고 엄혹했으며 모든 면에서 폭력적이었던 세상을 그린다.
‘응답하라 1988’은 서울 변두리의 중산층이 한가족처럼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했지만, ‘화려한 유혹’은 그와 비슷한 시대 부와 권력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최상위층과 그들로 인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사람을 속이고 음해하는 이야기야 ‘내 딸 금사월’로 이골이 났지만, ‘내 딸 금사월’은 정색하고 보기엔 웃음 코드가 많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엽기 코믹 복수극’이라고 규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통 드라마라기보다는 만화같은 면이 강하다.
‘화려한 유혹’은 다르다. 드라마가 그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어 보인다. 웃음 코드도 없다. 진지하고 끔찍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막장성은 지금껏 별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시청률 30%대에서 노는 ‘내 딸 금사월’이 막장이라는 비난의 포화를 선봉에서 맞아줬고, 월화극 중에서는 화려한 스펙을 갖춘 ‘육룡이 나르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는 사람만 보고, 아는 사람만 아는 드라마였던 ‘화려한 유혹’은 그러나 ‘육룡이 나르샤’가 아직도 비상하지 못하고, 최근 월화극 경기장에 들어선 KBS 2TV ‘무림학교’의 시청률이 3~4%까지 추락하면서 다시 시청률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메이퀸’ ‘황금무지개’에 이어 손영목 작가가 또다시 내놓은, 우리 현대사를 다룬 막장 통속극인 ‘화려한 유혹’에서 납치, 감금, 살인, 배신 같은 일은 매 순간 일어난다.
‘내 딸 금사월’에서는 악한들에 맞서 착한 영혼을 가진 인물들이 비중있게 활약하고 있지만, ‘화려한 유혹’은 모두가 속고 속이는 투쟁을 펼치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이 그린 따뜻한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화려한 유혹’이 그린 1980년대는 권력이 어떤 짓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소시민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희생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세상이다. 권력과 결탁해 온갖 비리를 저지르면서 고도성장기의 단물을 빨아먹고 비자금 1천억 원을 조성해 오늘에 이른 자들과 그들의 호의호식을 위해 억울하게 희생된 자들의 절규가 대비된다.
◇복마전 그 자체인 콩가루 집안
‘화려한 유혹’의 중심 무대인 강석현(정진영 분) 전 국무총리의 집은 복마전 그 자체다. ‘쇼윈도 부부’ ‘쇼윈도 형제’들이 사는 이 대가족 집안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를 이용해먹지 못해 안달이 나 있다.
원래도 콩가루인데, 이 집안의 메이드 출신이자 딸이 있는 과부 신은수(최강희)가 36살 연상인 강석현과 결혼에 골인하는 대사건이 벌어지면서 이 집안의 족보는 완전히 꼬여버린다. 신은수는 강석현이 낳은 혼외자식 강일주(차예련)와 어린시절 동무이고, 신은수와 강일주 사이에는 둘이 나란히 사랑했던 진형우(주상욱)라는 남자가 놓여있다.
‘화려한 유혹’은 신은수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죽음으로 내몬 강석현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들이 과거에 살았던 시대 자체가 흉악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은 ‘내 딸 금사월’ 저리 가라다. 스토리 전개에서 긴장과 이완이 공존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음모와 모략만을 위해 산다.
19일 방송은 일주가 층계에서 떠밀어 식물인간이 된 은수의 딸 미래를 누군가 빼돌려 외딴 컨테이너에 버려뒀다 극적으로 발견되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벌인 짓이고, 이를 또 이용해 언론에 폭로하는 사람도 있다.
억울하게 모든 것을 잃은 신은수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복수를 응원하게 되겠지만, 신은수가 치러내는 복수의 과정은 개연성도 없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가 교활하고 사악하며 포커 페이스라 질린다. 심지어 진형우의 캐릭터는 갈팡질팡하기까지 한다.
‘내 딸 금사월’ 역시 황당한 전개가 이어지고 있지만, 선량한 금사월을 중심으로 양심이 살아있는 정상적인 인간들이 제대로 기능하며 드라마의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반면 ‘화려한 유혹’은 어느 하나 숨 쉴 구석을 주지 않는 강도 높은 막장 스토리로 사람은 원래 악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