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근무를 서는 장면에서 돔은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베어 먹는 데 계속 실패한다. 낯선 영국인 관광객이 여러 차례 벨을 울리고, 맨발의 피오나가 찾아와 또 벨을 울린다. 그녀는 방에 들어가고서도 안내 데스크로 여러 번 전화해 먹을 게 있는지 확인한다. 그렇게 진을 뺀 뒤에 겨우 샌드위치를 먹던 돔은 속에 잘못 들어간 병뚜껑 때문에 목이 막혀 괴로워한다. 그 순간 위층에서 갑자기 내려온 피오나가 그의 생명을 구한다. ‘페어리’는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이 장면을 반복해 길게 보여 준다. 왜 그럴까.
돔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보려던 TV극에는 ‘하루 만에 일어난 대단한 변화’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가 결국 다 듣지 못한 그 노래는 이후 여러 차례 쓰이며 주제가 역할을 한다. 노래의 내용인즉 어제와 오늘의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화자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변화의 이유가 바로 당신이라고 노래한다. 돔은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외로운 남자였다. 삶을 바꾸어 줄 사람을 마주하지만 정작 그는 인연을 알아보지 못한다. 당신도 그럴지 모른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 혹시 누군가의 눈과 마주친다면 한 번쯤 낯선 운명을 꿈꿔 볼 만하지 않을까.
피오나는 필요한 물건을 공짜로 취득한다. 즉 훔친다. 그녀가 물건을 훔칠 때마다 돔을 둘러싼 세상도 조금씩 뒤집힌다. 피오나는 돔의 세상이 완전히 뒤바뀔 때까지 훔치고 도주한다. 두 사람이 만나는 카페의 이름 ‘희미한 사랑’(L’Amour Flou)도 ‘미친 사랑’(L’Amou Fou)을 슬쩍 뒤튼 것이지 않나. ‘페어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삶의 마법을 획득하기를 원한다.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일본 영화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에도 비슷한 인물이 나온다. 두 영화는 현실에서 출발한 인물들이 만드는 작은 혁명, 그것이 변화라고 알려 준다.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행동하기.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