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에 푹 빠져 지냈어요. 제가 이래 봬도 경기도 양평군이 자랑하는 ‘군민 배우’ 아닙니까?(웃음) 양평에 터를 잡고 산 지가 벌써 7년째이다 보니. 나들이가 갈수록 줄어들게 되고. 서울에 대한 관심 역시 사라지더라고요. 그냥 조용히 살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쯤 아내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게 서울 나들이의 전부였어요.
-갑자기 활동을 중단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3년 전 영화 ‘내 사랑’을 찍고 나서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어요. 예전에는 드라마든 영화든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도전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야겠다는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때마침 투자 환경 등 영화계 분위기도 극도로 침체하면서 제게 맞지 않는 작품들의 출연 제의만 계속 들어왔고. 연이어 거절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죠.
-이번에 개봉되는 ‘무법자’는 어떤 영화입니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막연한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나 기회가 좀처럼 닿지 않았어요. ‘무법자’는 실제로 일어났던 강력 범죄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영화에서 저는 범죄 피해자였던 아내의 죽음에 분노해 사적 응징을 결심하는 강력반 형사 ‘오정수’로 나오죠. 출연 계기를 굳이 밝힌다면. 매일 쏟아져 나오는 범죄 관련 소식에 갈수록 무덤덤해지는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개인에 대한 심층적 묘사보다는. 사건의 재구성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가 어떻게 완성됐을지 저 역시도 무척 궁금합니다.
-감우성 씨 특유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가 기대됩니다.
어휴…. 생각처럼 쉬운 연기가 아니더라고요. 예전에 ‘거미숲’ 때도 그랬지만. 잔인하고 끔찍하게 복수하는 방법을 계속 상상하다 보면 실생활에서의 감정도 피폐해지게 돼요. 특히 분노의 감정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 스릴러는 감정의 전환이 쉽지 않거든요. 촬영이 끝나고도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다른 배우들의 하소연이 꼭 엄살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촬영 후유증과 부작용을 이겨내기 위해 정신과 상담도 심각하게 고려할 정도였어요.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사적 응징의 필요성을 믿는 편이세요?
웬만해서는 불의를 아예 피하려 애씁니다(웃음). 예나 지금이나 화를 누르는 방법을 배우고 있죠. 공백 기간에 좋지 않은 일(지난해 한 조경업자가 감우성을 협박하다가 구속된 사건)로 난생처음 법정에 선 적이 있어요. “증언 도중 저도 모르게 거친 말이 나오면 어떡하죠”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상의했더니. 그 중 한 분이 “무조건 참으라”면서도. 자식을 망친 한 인간을 상대로 법조인이지만 은밀하게 사적 응징에 나섰던 한 판사의 예를 조용히 들려주더군요. 가능하면 법의 테두리를 지켜야겠죠.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내가 아닌 내 가족을 상대로 어떤 범죄가 일어난다면 솔직히 사적 응징도 불사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동감하시지 않나요?
-저 역시 가장이므로 확실하게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군요(웃음). 그나저나 2세 소식은 언제쯤 들려주실 생각이세요?
아기를 가지려 꽤 오랫동안 노력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더군요. 솔직히 지금은 아내와 저 둘 다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입니다. 마음을 편히 먹으면 언젠가는 좋은 소식이 있겠지만. 아기만을 기다리며 살지는 않으려고요.
-김수로 씨 등 절친한 동료 배우들과는 자주 만나는지 궁금합니다.
그 친구(김수로)는 바쁘고. 저는 한가한데. 감히 자주 만날 시간이 있겠어요?(웃음). 저희 집 근처에 (김)수로 어머님댁이 있어요. 가끔 어머님을 만나러 오면 잠깐씩 얼굴을 보죠. 다른 친구들과 선배들은 한 번씩 서울 올라갈 때나 만나죠. 그런데 한 번 집에 들어오면 좀처럼 바깥에 나가기가 싫어지니. 덩달아 인간관계의 폭도 좁아지는 것 같아 실은 걱정입니다.
-이번 영화로 달라질 감우성 씨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요즘 여러 배우와 달리. 저는 전략적이지 못해요. 혼자 만들어낸 배우의 길을 미련하고 고집스럽게 걷다 보니 얻은 결과죠.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내 만족과 이상만을 추구한다고나 할까요. 가장 큰 단점이죠. 제가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니라. 스타성이 아닌 연기 본연의 자세로는 평가받기 어려워진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이제는 정말 오래 그리고 잘 연기할 수 있는 배역을 만났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금방 달라지겠어요. 그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면 또 기다려야 할 수밖에요. 저를 노려보는 매니저의 시선이 조금 무섭긴 하지만요(웃음).
조성준기자 whe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