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포부를 먼저 묻자 그는 “제 이름 석자 김정태를 알리고 싶어요”라며 신인같은 대답을 했다. 1999년 영화 ‘이재수의 난’을 시작으로 수십여편의 작품에 모습을 드러낸 배우치고는 소박하다. 하지만 왠지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10여년 동안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동네 건달 혹은 비열한 캐릭터의 양아치 역만 주로 연기하다보니 악역 전문으로만 알려졌다. ‘연기파 배우 김정태’로서 알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직도 제 이름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다수로부터 인격이 한정되어지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적도 있고요. 연기였을 뿐인데. ‘저 사람은 나쁜사람이다’고 인식되는 게 좋지는 않아요. 저를 보면서 캐릭터를 투영하는 것을 넘어서. 인격이나 사고체계까지 단정짓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부산 태생인 그는 주로 영화에서 걸쭉한 부산 사투리를 쓰는 건달 역을 맡았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연기를 한 덕에 대부분의 감독들은 비슷한 배역이 생기면 늘 김정태에게 러브콜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게 싫어 의도적으로 거절을 한 적이 있다. “없는 놈이 튕겨?”라는 말도 들었고. 자연스럽게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작품이 없을 때요? 거지처럼 살았죠.(웃음) 배우가 작품이 없으면 할 게 없잖아요. ‘근 10년간 지방에서 술집을 같이 오픈해보자. 얼굴마담만 하면 된다’는 식의 제의도 많았지만. 배우로서 자존심까지 버릴 수는 없었어요. 단 한번도 ‘연기를 못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내 나름대로의 자부심이죠.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더 먼 미래를 생각했죠. 제일 잘 하고. 빛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요. 절실한 목표와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지치지 않고 연기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흔희들 배우들을 ‘천의 얼굴’에 빗댄다. 김정태 역시 다르지 않다. 무서운 면면이 보이는 가운데. 코믹스럽기도 하고 심지어 여성스럽기도 하다. 보기와 다르게(?) 시를 쓰는 게 취미이며. 재즈를 즐겨듣고 실력도 상당하다는 게 주위 사람들의 증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1년 후배와 19년의 열애 끝에 지난해 결혼을 했고. 없는 살림에도 아내를 건축학 박사로 만든 숨은 공신이다.
“믿기지 않으시죠? 사람은 이래서 겪어봐야 안다니까요. 하하하. 어릴 적부터 시를 좋아했고. 늘 시를 써왔어요. 지금은 많이 잃어 버렸지만. 언젠가부터 제 인터넷 카페에 따로 자작시를 올려놨죠. 한 200편 쯤 돼서 내년에는 제 이름을 걸고 시집을 내볼까 구상중이예요. 재즈는 듣는 것을 좋아하고요. 제 얼굴과 안어울리는 것 같죠?(웃음) 하지만 제 안에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요. 내면에 이러한 자아가 없이. 건달 역할을 실감나게 했다면. 진짜 건달이랑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 외로 예민하며. 위트도 있고. 고집도 세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덕에 대본을 받아들었을 때 다시 김정태 식으로 표현해 작품을 더욱 개성있게 만들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의외성에 지금의 아내도 반한 것 같다. 그는 아내가 자신에게 빠진 몇 가지 중 한가지 이유를 설명했다.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제가 생일선물로 책을 사달라고 했데요. 굉장히 하이퀄리티의 책이였는데. 그 책을 또 열심히 읽는 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제가 조금 예민한 성격이라면. 아내는 전형적인 공대여자죠. 하하하. 듬직하게 저를 받쳐주는 사람이고요. 한참 아내가 박사논문을 쓰고 있을 때 어머니가 많이 위독하셨거든요. 공부하기도 힘들텐데. 결혼도 하기전에 우리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사람이 흔하겠어요. 늘 옆에서 힘이 돼줬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맙죠. 저 그리고 곧 아빠도 됩니다! 결혼이 제게 많은 변화를 줬어요. 일과 개인적으로요. 우리부인 사~랑해요.”
김정태의 아내는 현재 임신 4주다.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에 겨운 그가 요즘 더 웃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처럼 밝고 유쾌한 역할로 스크린 앞에 서기 때문이다. 영화 ‘마음이2’에서 그는 성동일과 함께 7억원 상당의 보석을 훔쳐 달아나던 중 엄마가 된 ‘견공’ 마음이의 새끼 장군이를 납치하며 요절복통 웃음을 선사한다.
“‘마음이2’는 18금 전문 악역배우 김성태가 욕 한번 없이 유쾌하게 연기한 유일한 작품이죠. 언어가 누에고치에요. 한마디로 비단길같은 언어 사용이죠.(웃음) 더불어 ‘나쁜남자’와 10월에 개봉하는 영화 ‘방가방가방가’에서도 빵빵터지는 웃음 드리니까요. 이제 더 이상 악역전문은 잊어주세요. 김정태가 훈훈한 웃음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남혜연기자 whice1@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