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를 찌른 ‘아티스트’의 습격이 생뚱맞을 건 없다. 선정에 참가하는 5765명 중 94%가 백인, 77%가 남성이며 평균 연령이 62세에 이를 만큼 아카데미 회원들은 편파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흑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보이는 배타성에 대해 비난받자 근래 들어 색깔을 감췄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와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 최근 작품상 수상작 중 ‘킹스 스피치’(2010),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는 영국 영화다. ‘허트 로커’(2008)는 미국의 이라크 파병을 건드린 여성감독의 독립영화다. ‘아티스트’는 배급만 미국 회사(와인스타인컴퍼니)가 했을 뿐 감독과 주요 배우, 스태프 등은 대부분 프랑스 국적이다. 아카데미의 탈(脫)할리우드 행보를 보여 주는 데 안성맞춤인 셈이다.
‘아티스트’는 아카데미의 입맛에 들어맞는 주제의식까지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1세기 동안 ‘영화’라는 매체가 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데 있다. 첨단기술과 거대자본의 효과는 ‘양념’에 해당한다. 결국 이야기의 즐거움과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야말로 영화관을 찾는 목적일 텐데 이런 주제의식을 ‘아티스트’는 되새김질해 낸다. 아카데미와 무성영화의 인연도 흥미롭다. 유성영화가 등장한 2년 뒤인 1929년 출범한 아카데미시상식은 초기에 무성영화를 수상작에서 배제한 탓에 찰리 채플린 등 무성 영화인들의 반발을 샀다. 뒤늦게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는 “사실상 외국영화인 ‘아티스트’에 주요 부문 수상을 안긴 건 작품 자체의 가치도 있겠지만 유럽영화이면서도 미국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보여 줬다는 측면을 노회한 아카데미 회원들이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화들이 놓치고 있던, 영화가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아티스트’는 짚어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국에서 개봉한 ‘아티스트’는 27일까지 4만 9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와이드릴리즈(대규모 개봉)의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고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소규모 개봉했기 때문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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