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는 발인식에서 대표로 애도의 뜻을 전하며 “정계, 재계 등에서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코미디만 바라보고 발전시켜 온 분”이라며 “남은 사람들이 코미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다.
엄용수 한국코미디언협회장은 발인식 참석 후에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후배들의 방송을 일일이 지켜보고 조언해주시던 훌륭한 모니터요원이자, 훌륭한 스승이셨다”며 “이제 누가 그 역할을 할지 너무 아쉽고, 생전에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영결식은 오전 8시부터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예능교회(옛 연예인교회)에서 열린다.
예능교회는 종교활동에 힘써온 고인이 설립을 주도하고 장로로 활동해온 곳이다.
고인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안장된다.
지난 27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지인과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행사 기간에 고인의 부음을 접한 제4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도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1926년 평양에 태어난 고인은 1945년 태평양악극단에서 악사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배삼룡, 곽규석, 이기동, 남철, 남성남 등과 함께 1960∼70년대 한국 코미디 전성기를 이끌며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했다.
‘오부자’,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 4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MBC TV의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를 통해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고인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현역 시절부터 연예인 선교에 힘썼으며 은퇴 후에는 종교활동에 전념해왔다.
고인은 27일 새벽 노환으로 인해 향년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