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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Faction·사실에 기반한 창작)을 표방한 사극 드라마는 늘 어느 선까지 상상력을 발휘할까를 두고 고민하게 마련이다. 상상력이 적절한 선을 넘어서면 ‘팩션’이라는 전제로도 설득할 수 없는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작 사극 ‘기황후’가 최근 역사왜곡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인공 캐릭터를 가상의 인물로 교체하며 한발 물러섰지만 시청자들의 따가운 시선은 여전하다.


‘기황후’는 ‘불의 여신 정이’의 후속으로 28일 첫 전파를 탄다. 고려 말기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 제1황후 자리에 오른 기황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할 예정이다. 주중 드라마로는 드물게 총 50부작으로 방영되는 대작인 데다 ‘다모’, ‘황진이’ 등으로 ‘사극 퀸’에 등극한 하지원이 주연을 맡아 주목받았다.

그러나 드라마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기황후는 원나라 혜종의 황비가 된 후 자신의 일가친척을 요직에 심어넣어 세도 정치를 폈고, 자신의 일가가 숙청당하자 혜종을 부추겨 고려를 정벌하게 했다. 원나라에서 고려의 영향력을 넓혔지만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모국을 이용하기도 했던 기황후를 미화한다는 것이다. 또 기황후와 삼각관계 로맨스를 펼칠 고려 28대왕 충혜왕(주진모)은 나라의 정사는 뒷전으로 한 채 향락을 즐겼으며 아버지인 충숙왕의 후비 등을 성폭행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애초 제작진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으나 비난이 거세지자 충혜왕의 캐릭터를 가상의 인물인 ‘왕유’로 교체했다.

지난 24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상상력에 기반한 팩션’임을 재차 강조했다. 장영철 작가는 “기황후에 대한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기황후의 이름인 ‘기승냥’도 제작진이 지은 것”이라면서 “역사적 인물의 뼈대에 70%는 허구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자막을 통해 상상력에 근거한 허구라는 점을 공지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한희 PD는 “사극의 주인공 중에는 연산군이나 장옥정처럼 문제의 인물이 많다”면서 “인물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더듬으려는 건 아니며 드라마에 방점을 찍었다”라고 강조했다. 기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보다 그의 인생 역정을 재미있게 그리겠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 기황후는 ‘가장 높이, 가장 아름답게 핀 꽃’이자 ‘대륙을 품은 철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그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인물인 탓에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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