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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수학자 흥미로운 인생역정

영화 속 그늘에 가려진 숨은 영웅의 이야기는 조각난 퍼즐을 맞춰 가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쾌감을 준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해독 불가능한 암호인 ‘에니그마’를 풀고 승리를 이끌어 낸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크로스워드 퍼즐의 귀재이자 암호 해독가인 27세의 튜링은 24시간마다 ‘1590억의 10억배’ 경우의수가 생성돼 사람의 두뇌로는 해독이 불가능한 ‘에니그마’를 푸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당시 독일군은 이 에니그마를 활용해 무전을 주고받았다.

초반에 미국 드라마처럼 경쾌하게 진행되는 영화는 튜링이 에니그마를 풀기 위해 인류 최초의 컴퓨터인 튜링 머신을 개발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 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전쟁 종식을 2년이나 앞당기고 그 결과 1400만명의 무고한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튜링의 이야기는 4년여 전부터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군침을 흘리던 소재였다. 인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기밀 작전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베일에 감춰졌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개발한 전쟁 영웅인 그가 자살을 선택하기까지의 인생 역정에 극적 요소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운의 수학 천재 이야기를 무의미한 화면 없이 촘촘히 잘 엮어 나간다. 특히 튜링의 캐릭터 자체가 무척 흥미롭다.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타인과의 소통은 원활하지 못해 동료들의 눈에는 거만하고 꽉 막힌 외골수로 비치는 인물 유형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천재와 괴짜 사이, 전쟁 영웅과 범죄자 사이에서 겪는 튜링의 외로움과 좌절, 죄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사실적으로 소화해 냈다. 컴버배치는 자신이 각본을 직접 추적해 영화 출연을 자청했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후반부에서는 튜링이 시대의 희생자가 되고 영국이 그에 대해 함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비중 있게 다룬다.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는 암호 해독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사회나 국가가 외면한 튜링의 다름을 유일하게 인정하고 감싼 휴머니스트로 등장한다. 모튼 틸덤 감독은 단순한 전기영화로 흐르지 않게 하려고 액션, 스릴러, 로맨스 등의 다양한 장치를 뒤섞었다. 그러나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구심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1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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