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연중 극장 관객이 가장 많은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지난 주말 상영 시간표만 일별해도 블록버스터들의 스크린 독식 상황은 한눈에 읽힌다. 16개 상영관을 갖춘 이 극장에서는 지난 21일 ‘미스터 고’가 25회, ‘레드: 더 레전드’ 22회, ‘퍼시픽 림’ 21회, ‘감시자들’이 19회 상영되는 동안 다양성 영화인 ‘마스터’와 ‘까밀 리와인드’, ‘브로큰’ 등은 3~4회씩 상영되는 데 그쳤다.
최근 다양성 영화 한 편을 배급한 소규모 배급사의 관계자는 “수많은 영화가 상영 한 번 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상황에서 블록버스터를 뚫고 일반극장에서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면서 “극장이 작은 영화를 상영하더라도 사각시간대인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집중시키는 관행 역시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명왕성’의 제작사인 SH필름도 개봉일인 지난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블록버스터 외화와 대형 한국 영화에만 황금 상영시간대를 몰아주는 극장들의 관행 때문에 관객들에게 제대로 선택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소한의 상영 회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관객들을 만나 보기도 전에 폐기처분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시장의 성장이 다양성 영화의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지난해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적이 올해도 유효한 셈이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스크린 점유율에 비해 정작 관객 점유율은 크게 떨어지는 현상도 관객이 원하는 것에 비해 대형 영화의 스크린 독식이 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경우 1341개의 스크린(지난해 말 기준 전국 스크린 2081개)을 차지하면서 개봉 후 첫 주말인 지난달 8일에는 관객 점유율이 62.1%에 이르렀지만 평일에는 10%대의 저조한 실적을 면치 못했다.
전문가들은 상업영화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6일 국회에서 열린 ‘스크린 독과점, 제도적 개선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배급과 상영의 겸업 금지 ▲영화당 스크린 수 제한 ▲대안 영화 상영관 확대 등을 제안했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은 “미국 등이 적용하고 있는 변동 부율(제작사와 극장 간의 입장 수익 분배 비율)을 도입해 단기간 물량 공세보다는 다양한 영화의 장기 상영을 통해 수익을 얻는 구조로 바꿔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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