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주연보다는 주연들의 뒤를 받치는 조연 역할로 스크린에서 활약했다.
1936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스크린에 공식 데뷔했다.트위스트 김이라는 예명은 그를 발탁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줬다.
데뷔 후 불과 2년만에 만난 ‘맨발의 청춘’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준 작품이다.
신성일·엄앵란과 함께 호흡을 맞춘 그가 뛰어난 트위스트 실력과 재기어린 입담으로 청춘스타로 자리매김했던 것.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등에 함께 출연했던 엄앵란은 30일 “트위스트 김은 주연은 안했지만 당당한 조연이었다”며 “개성이 아주 강한 배우였다.다른 사람이 쫓아서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연기를 했다”고 회고했다.
‘맨발의 청춘’ 이후에는 주로 뒷골목 세계에서 주인공들을 보좌해주는 코믹한 캐릭터로 활약했다.
‘오늘은 왕’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 ‘성난 영웅들’ ‘사랑의 종합병원’ ‘남부군’ 등 16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트위스트 김은 춤과 노래,연기,코미디에 능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특히 1960년대 베트남전 파병 국군과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파견근로자를 위한 위문공연에서 맹활약하기도 했다.
각종 사투리뿐 아니라 승마,사이클,수영,사격 등에도 능통한 만능 스포츠맨.게다가 평상시에도 연기할 때처럼 상당한 입담으로 주위를 흥겹게 만들었다고 한다.
엄앵란은 “남편(신성일)과 나는 트위스트 김과 항상 함께 다녔다.우리가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충무로에 퍼뜨리고 다닌 사람도 다름아닌 트위스트 김이었다”며 “‘트위스트 김을 보면 가만두지 않을거야’라고 남편과 제가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그는 “세월한테는 이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속절없이,말없이 떠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옛날에 청바지를 입고 트위스트를 추던 게 엊그제 같은데..”라며 아쉬워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트위스트 김’이라는 예명을 도메인에 사용한 음란사이트가 나와 음란사이트 운영자로 몰리면서 우울증을 앓고 한때 자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이후 관련 재판 승소와 함께 조금씩 활동의 지평을 넓혀가던 트위스트 김은 2006년 9월 공연 도중 넘어져서 머리를 다쳐 4년여간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이날 뇌출혈을 극복하지 못하고 7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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